라스베가스에서 우연히 만난 마네킹
BAD Choices make GOOD Stories!
지난 미국 3.5주 시간 중 베네시안 라스베가스를 거닐다 아래 옷을 입고 있는 마네킹을 우연히 만났다.
나도 모르게 '아.....' 라는 감탄사와 함께 한동안 우둑커니 그 마네킹 앞을 떠나지 못했다.
수많은 기억들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나쁜 선택?
그 중에서도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삼성전자 재직시절 서남아총괄의 초대 보안주재원으로 선발되어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를 누볐던 시간이다. 혹자는 "주재원? 아니 나쁜 선택이라면서 뭔 주재원 타령? 회사원으로서 최고의 제도 중 하나 아니야?"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그곳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우선 그 전년도에는 인도를 중심으로 한 서남아지역이 IT분야에서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자 본사 차원의 대대적인 경영진단이 있었고, 향후 서남아지역에서 중요한 과제를 많이 수행하게 될테니 그 후속 조치 중 하나로 본사의 보안전문가를 파견하라는 무거운 숙제가 떨어진 상태였다.
또한 그 이야기는 곧 다른 지역의 보안주재원은 이미 수많은 선배들이 기반을 잘 다져놓은 만큼 후배들은 인수인계만 받고서 연착륙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서남아총괄에 파견될 보안주재원은 초대, 즉 최초의 주재원인만큼 서남아총괄을 비롯한 10여 개에 달하는 법인의 보안체계를 바닥부터 완전히 새롭게 다져야 하는 만큼 많은 숙제가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했다.
게다가 내가 파견된 후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의 인도마저도 다수의 사람들이 단지 여행만으로도 버거워하는만큼 그때는 더더욱 지내기가 어려운 열악한 환경이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회사가 해당 지역으로의 출장자를 찾아서 보내기도 쉽지 않았을까?
그래서 당시 절대 다수에게 서남아총괄 보안주재원은 나쁜 선택, 아니 최악의 선택지였다. 대부분 나에게 제안하면 어쩌지 하며 기피하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사의 부장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이과장, 서남아총괄 보안주재원 어때? 생각 있어?"
『와~ 보안주재원 좋죠! 맡겨만 주신다면야.』
"어? 아니 아니... 서남아총괄 보안주재원이라고. “
『네! 그럼요! 좋죠!』
”아니 인도 주재원이라니까? 지금 당장 답을 주지 않아도 돼. 생각할 시간을 줄게. 가족과도 상의해 봐야지. “
『네! 서남아총괄 보안주재원 좋습니다!』
”어허이, 이 사람 참…“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데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운이 좋게도 나에게 인도는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아니었다. 흔히들 인도를 방문한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들 한다.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싫어하거나. 중간은 없다고들. 사실 전년도까지 사원대표인 한가족협의회 활동을 했던 나는 우연히도 재임기간에 단체로 인도사업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다행히 내가 속해 있던 총괄의 사원대표들은 모두 전자에 속했기 때문에 인도라는 사실이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둘째, 나의 보안에 대한 철학을 실제 현장에서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동안 정보보호 업무를 해오면서 기존 보안 체계에 일부 변화를 주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아이디어들이 있었고 주변과 소통하며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던 터라 이번에는 가능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나의 한계를 실험해 보고 싶었다. 영어로만 이루어지는 소통의 환경, IT보안만이 아닌 보안의 전 영역을 밑바닥부터 설계하고 구축하고 운영해야 하는 환경, 리더십을 발휘하여 수십 명의 보안인력을 선발하고 조직을 꾸려 내가 없어도 원활하게 동작하도록 해야 하는 환경 등 다양한 도전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미 나는 그렇게 나를 그곳으로 내몰고 있었고 어느새 그곳에 있었다.
이후에는 맨땅에 헤딩하며 그야말로 미생을 찍고,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으며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힘들고 외로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내까지 끌고 나와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후회하는 날들도 많았다. 게다가 주재원의 삶을 살아가던 현지 집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화재가 발생하여 모든 것을 잃고 그것을 계기로 한국으로 귀임하면서 정점을 찍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은 전혀 달랐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소중한 경험들이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하는데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님을 만나 내 삶의 중심에 "나"로만 가득 차 있던 삶에서 나 스스로 내려와 그분께 내 자리를 내어드릴 수 있었고, 서남아 보안주재원 시절을 비롯한 그동안의 여러 가지 자타가 인정했던 나쁜 선택들이 사실은 나쁜 선택이 아니라 더 크고 소중한 곳에 가져다 쓰시려고 나를 훈련시키고 예비시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 미국으로의 3.5주 부재로 설 연휴 때 만나지 못한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을 모두 집으로 초대해 이번 연휴에 함께 보내려고 합니다. 블로그 방문자분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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